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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치인 안철수에 일대기에 대해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에 나이는 올해 57세이며 62년 호랑이 띠죠, 고향은 부산이며 혈액형은 AB형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종교는 가톨이지요 단국대학교 기초의학과 교수로 부임했으며 학과장 보직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후 서울대 의대에선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91년 V3라는 컴퓨터 안티 바이러스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으며 이는 우리나라에선 첫로 개발된 백신 프로그램이자 상용 소프트웨어다. 이후 프로그래머로서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하였고, 성공한 벤처기업가로 자리매김 하였습니다. 2005년 안철수연구소 CEO직에선 물러난뒤 KAIST 교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지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이력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집중을 받았고, 이후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작가와 방영인 김제동과 또한 청춘콘서트를 진행하여 많은 사람들에겐 높은 지지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지지를 자산으로 정치권에 입문하였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 당대표로써 제6회 지방선거에선 일정 수준의 성과를 내었으나, 2014년 재보궐선거에선 패배한 후 대표직에선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2015년 2.8 전당대회로 시작된 문재인 대표 체제와의 지속적인 갈등을 빚다 결국 탈당하여 2016년 국민의당을 창당했습니다. 국민의당 공동대표로서 20대 총선을 지휘하여 서울 노원구 병에선 당선되고, 의석 38석이라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후 리베이트 파문으로 당대표 직에선 사퇴했습니다. 19대 대선 경선에선 국민의당 후보로 당선되어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21.41% 득표로 홍준표 후보에겐 밀린 3위로 낙선했습니다. 이후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으로 정치은퇴까지 거론되었으나, 오히려 이런 세간의 예상과 반대로 국민의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였습니다. 당내에선 극심한 반발이 있었으나 강행하였고 이후 당대표로 당선되었습니다.



국민의당 대표로 당선된 이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대비하여 바른정당과 연대 논의를 시작했으며, '이는 합당 논의로 이어졌습니다. 당내에선 "말바꾸기", "호남에 대한 배신"이라며 강한 반발이 있었고, 결국 분당 사태까지 겪게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당을 강행하여 바른미래당을 창당하게 되며, 이후 당대표직을 사퇴하여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담당하고 동시에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득표율 19.55%로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에겐조차 밀린 3위로 낙선하였습니다.  이후 독일 뮌헨 근교의 막스 플랑크 혁신과 경쟁 연구소에 초빙 연구원 자격으로 연수를 간 상태이며, 향후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활동을 재시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