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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관은 1946년 6월 2일에 전북 정읍에선 아버지 송준석과 어머니 국갑술 사이에선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3 1운동 당시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며 독립운동을 도와 일제의 보안법 위반으로 갖은 고초를 겪은 송영근이며 1942년에 사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한국 전쟁으로 인해 실종되어 어머니 밑에선 성장하였습니다. 송대관은 실종된 아버지의 시신은 아직까지도 찾지 못하였습니다고 전했습니다.1965년에 전주영생고를 졸업한 송대관은 서울로 이사하여 오아시스 레코드의 사장인 손진석을 만나 그의 일을 도우면서 가수 트레이닝을 받게 되었고 1967년에 정통 트롯트 [인정많은 아저씨][초원 작사/ 김성유 작곡]를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하였습니다. 





송대관이 데뷔하던 당시엔 남진과 나훈아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호응을 얻지 못하고 무명으로 전락하였습니다. 1971년 부르스 느낌이 나는 [세월이 약이겠지요][송대관 작사/ 신대성 작곡]를 발표하였는데 이 곡이 인지도를 얻으며 방영 출연량이 증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75년에 [해뜰날][송대관 작사/ 신대성 작곡]이 크게 힛트하면서 본격적으로 송대관이라는 이름을 시청자들에게 널리 알리며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당 곡은 반복적이면서도 희망과 긍정적인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가 돋보이며 당시 남진, 나훈아, 하춘화 등 대세 가수들을 제치며 관심몰이를 하고 1976년 방영국 가요대상 3개를 수상하고 동시에 가수왕에 등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성함

송대관[宋大琯]

출생

194662[73]-전라북도 정읍시

163cm

출신가문

여산송씨

출신학교

전주영생고등학교

첫작품

1967년 노래"인정많은아저씨"

본가가족관계

결혼유무,(배우자정보) 이정심-슬하2

십이지

개띠

별자리

쌍둥이자리

종교사항

무종교 개신교[순복음교회] 예장합동


[해뜰날]의 대힛트로 일약 스타가 되었던 송대관은 이 때부터 꾸준히 음반을 발매하며 가수 활동에 전념하였고 1976년 영화에도 출연하여 스크린에도 데뷔하였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송대관은 결국 1980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송대관은 약 10년 간 미국 생활을 하다가 1988년에 대한민국에 귀국하였습니다. 귀국 후 [혼자랍니다][신대성 작사/ 신대성 작곡]를 부르며 인지도를 얻다가 1989년 [정 때문에][장경수 작사/ 정주희 작곡]를 발표하고 나서 20만장의 레코드판매량을 기록하고 라디오 차트 분야에선 3개월간 1위를 하며 또다시 관심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1990년 대에 곡 제목처럼 실제로 차표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시청자들에게 인식시킨 [차표 한장][조동산 작사/ 원희명 작곡], [인생은 생방영][김동찬 작사/ 박현진 작곡], [고향이 남쪽이랬지][조동산 작사/ 조동산 작곡] 등 수많은 곡을 힛트시켰는데 그 중 1998년 [네 박자][김동찬 작사/ 박현진 작곡]은 여러 세대를 포섭하며 남녀노소 누구나 부르는 국민애창곡이 되었고 KBS 가요대상 본상,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외에 여러 상을 받게 해준 곡이 되었습니다.





송대관은 1980년대 후반부터 트롯트를 부활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그 역할의 중심이 되었던 현철, 태진아, 설운도와 같이 트롯트 4대 천왕 체제를 구축하였습니다. 그 중에 같이 이민 생활을 했던 태진아와는 개인적으로 각별한 사이로 지내며 그와 같이 명콤비로 불리며 매년 [송대관 & 태진아 라이벌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2002년 58세에 아내 이정심이 작사한 [유행가][이정심 작사/ 최정환 작곡]를 발표하였는데 이 곡은 2000년대 초반에 가장 크게 힛트한 송대관의 노래로 화려한 의상, 엇박자 댄스를 선보여 젊은 층들이 즐겨 부르는 트롯트로 자리매김하였고 이후 [사랑해서 미안해], [내 여자], [오래오래]를 부르며 활동해왔답니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태진아와 같이 [명인제약 이가탄]의 전속모델로 활약하였습니다. 2008년에는 김양을 스카웃하여 자신의 후계자로 선정하여 후배양성에도 적극적인 노력을 하였고 그 해에는 남진의 뒤를 이어 제 2대 대한가수협회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송대관은 가수 외에도 배우로도 활동하여 2009년 KBS 드라마 [공주가 돌아왔다], 2011년 SBS 드라마 [신기생뎐]이라는 두 편의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연기실력을 뽐냈습니다. 또한 2009년 10월 31일에는 정읍시 출신의 국민가수이자 정읍시 홍보대사이기도 한 송대관의 명성을 통하여 정읍시와 내장산을 전국에 알리고 가요제의 명품화를 통하여 정읍시의 이미지 향상을 꾀합니다는 취지로 마련된 [정읍 송대관 가요제]가 처음 개최되어 차세대 트롯트 유망주의 등용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2015년 8월 13일에 부동산 투자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고 며칠 뒤에도 무죄로 풀려났고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는 의미로 노래 "딱 좋아" 를 발표하였습니다.